한국교회 사제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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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03. 21발행 [1060호]
 
[기획/한국교회사제열전⑮-2]방유룡 신부<중>

'면형무아'의 여정 따라서


▲ 책상에 앉아 한창 집필 중인 창설자 방유룡 신부.


   1946년 4월 21일. 좌우 대립이 극에 이른 혼란한 해방공간이었다. 당시 개성본당 주임으로 있던 방유룡 신부는 한국 순교자를 주보로 한 한국순교복자수녀회를 설립한다. 설립회원인 윤병현ㆍ홍은순 수녀와 함께였다.

 자신의 생애를 변화시킨 결정적 회심이 있은 뒤 27년 만에 수도회를 설립한 방 신부는 수도회와 함께 나를 버리고 하느님과 하나되는 '면형무아(麵形無我)'의 여정에 들어간다.

 수녀회 설립 직후 수도생활은 여러 모로 열악했다. 그럼에도 개성본당 부속 청석기와집을 임시 수도원으로 삼아 수도자들은 본당과 육영학교, 장미고등양재학원을 통해 사도직에 헌신했다. 1949년 6월 24일에는 개성 자남동에 자력으로 수녀원을 마련했다. 이 수도원은 1950년 1월 서울 청파동(현 총원)에 수녀원을 마련하는데 초석이 됐다.

 6ㆍ25전쟁은 그러나 모든 걸 파괴했다. 수녀원이 폭격으로 파괴되자 수도자들은 평택으로 피란을 떠났다가 다시 돌아와 서울 가회동본당에서 잠시 공동생활을 한다. 이어1ㆍ4후퇴와 함께 대구, 부산을 거쳐 경남 통영에서 피란생활을 하다가 다시 서울로 돌아온다.

 모든 게 폐허로 변했다. 그래서 타 수도회는 미군 도움을 받아 사업을 넓혀갔다. 한국순교복자수녀회에서도 미군 도움을 받자고 건의했으나, 방 신부는 자립원칙을 정한다. 당시 방 신부의 말이 2009년에 발간된 「한국순교복자수녀회 면형무아의 여정 60년」에 기록돼 있다. "우리는 의덕만을 구해야 한다. 그것만 있으면 하느님께서 다른 것은 다 주신다. 우리 힘으로 살자."

 "천국과 의덕만 구하라"는 방 신부 가르침을 따라 자립원칙을 정한 수녀회는 1951년 12월 12일 교황청 인류복음화성으로부터 수도회 설립 승인을 받고, 양재를 통해 재정을 충당했으며 순교자 유물 수집을 통해 순교자 현양에 주력했다.
▲ 방유룡 신부가 1970년대에 한창 수련 중이던 수녀들과 함께하며 즐거워하고 있다.


 이후 60여 년 세월은 혈업의 상속자로서 순교자들처럼 매 순간을 눈물로 씻고 역경으로 맛을 내는 시간이었으며, 사랑의 불로 푹 익힌 희생정신을 하느님께 봉헌하는 산 제물이 되는 여정이었다.

 이런 여정을 걸어온 수녀회는 2007년 1월 24일 한국인 수도회로는 최초로 대전ㆍ수원 관구를 설립해 큰 수도회로 성장하기에 이른다. 이러한 관구 분할은 한국 수도회 역사에 한 획을 긋는 의미를 내포한 이정표와도 같은 사건으로, 양적 성장과 더불어 질적 성장을 위한 쪼개짐의 신비와 성체성사의 신비, 면형무아의 영성을 드러낸 것이었다.

 25년 동안 본당 사목에 주력하던 방 신부는 1955년 10월 후암동본당 주임을 끝으로 본당 사도직을 떠났다. 이에 앞서 1953년 10월 30일 자신이 설립한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에서 수도자로 살기 위해서였다. 1957년 5월 6일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에서 수도성을 무아(無我)로, 수도명을 안드레아 성 김대건으로 정하고 종신서원을 한 방 신부는 교구 사제에서 수도 사제로 소속을 바꾼다. 이후 방 신부는 한평생을 스스로 영적 수덕생활에 몰입하면서 남녀 수도회 회원과 찾아오는 몇몇 일반 신자들 영적 지도에 전념했다.

 1957년 4월 서울 성북동 본원이 완공되면서 수도생활이 본궤도에 오르고 방 신부는 지원자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교황청 인류복음화성에서 1956년 12월 인준된 성헌(聖憲)에 따라 공동생활을 시작했다.

 103위 성인 가운데 성 김대건 등 14위가 순교한 새남터 성지 개발과 관리는 특히 방 신부가 1984년 10월 20일까지 27년간 총장으로 재임한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에 큰 의미를 지닌다. 1950년 봄 한국천주교회 감목들이 새남터에 순교기념탑을 건설하기로 계획하면서 시작된 성지 개발은 1956년 7월 8일 임시 순교탑이 세워지면서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에 성지 관리가 넘어와 이후 50여 년간 절두산순교성지와 함께 순교자 현양에 큰 몫을 담당했기 때문이다.

 방 신부는 이어 1957년 3월 한국순교복자수녀회 '외부회'(재속회)를, 1962년 10월 1일 외부회원 중 미망인 공동체인 '빨마회(현 한국순교복자빨마수녀회)'를 각각 설립함으로써 교회 내 모든 신분을 위한 대가족 수도회를 설립한다.

 방 신부가 이처럼 대가족 수도회를 설립한 데는 이유가 있다. 모든 사람은 성화하도록 부름을 받았기에 영적 삶을 살아야 한다고 방 신부가 가르친데서 기인한다. 그래서 수도회 조직도 천주 성삼위를 본따 관상과 활동, 봉사라는 세 가지 형태를 취했다. 이렇게 방 신부는 평생 '무엇을 해야 한다'보다는 '어떻게 살아야 한다'를 가르치는데 열심을 다했다. ▶다음 호에 계속
오세택 기자 sebastiano@pbc.co.kr
사진 제공=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한국순교복자수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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