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2~1132. 프랑스 출생. 주교. 성인의 어머니는 성인을 가졌을 때 성 베드로 사도가 자신의 아들을 안고 하느님께로 향하는 꿈을 꿨다고 합니다. 성인은 뱃 속에서부터 하느님께서 선택한 사람이었나 봅니다. 성인은 어렸을 때부터 신학 공부에 매진했습니다. 가톨릭 교회 교리는 물론 교회법에도 정통하게 됩니다. 성인은 프랑스 발랑스주교좌본당에서 교구장 주교를 도와 일했습니다. 당시 주교는 성품이 바르고 교회 가르침에 해박한 성인을 신뢰하며 많은 일을 맡겼습니다. 성인은 1080년 자신이 모시던 주교와 함께 아비뇽에서 열린 회의에 참석합니다. 교황 그레고리오 7세가 참석했던 이 회의에서 성인은 교황에게 직접 주교품을 받습니다. 그리고 프랑스 그레노블의 교구장이 됩니다. 평신도였던 그에게 내려진 파격적인 자리였습니다. 교황이 성직자보다 더 성직자다운 생활을 하고 있었던 성인에게 전격적으로 주교품을 준 것입니다. 성인은 그레노블 교구장으로서 교구 개혁에 앞장섭니다. 당시 교회는 성직을 사고파는 등 세속화돼 있었습니다. 성인은 성직매매를 엄격히 금지하고 사제 독신제와 규율을 강조하고 나섭니다. 교구 조직도 정비하고 충분한 재정도 확보합니다. 성인이 교회를 바로 세울 것이라고 본 교황의 선택은 꼭 들어맞았습니다. 성인은 성 부르노가 세운 카르투지오회가 자신의 교구에 설립되는 것을 허락하며 이 수도회를 적극 지원합니다. 성인은 세상에서 가장 엄격한 수도회로 알려진 카르투지오회의 규율을 높이 평가하며 이 수도회에 입회하고 싶어했다고 합니다. 성인의 삶은 고행과 금욕, 청빈과 기도로 점철돼 있습니다. 성인은 1134년 교황 인노첸시오 2세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습니다. 박수정 기자 catherine@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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