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화 산실, 지금 우리 교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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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08. 07발행 [1128호]
 
[복음화 산실, 지금 우리 교구는] 마산교구-명례성지 성역화

잊혔던 성지, 신앙 산실로 되살려 순교영성 고양

교구, 순교자 묘역 성역화 및 순교 영성 고양에 힘써
하느님의 종 5위 묘소 방문ㆍ순례 장려, 심포지엄 개최

 순교 영성으로 세상의 복음화를!

    마산교구(교구장 안명옥 주교)는 지난해 향후 3년의 사목지표를 '순교영성으로 세상의 복음화를!'로 정했다.
 이에 따라 교구 출신 시복시성 대상자들의 묘소를 자주 방문하고, 가능한 도보로 순례할 것을 교구민들에게 권하는 등 순교영성을 고양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또 순교자 묘역 성역화 사업 및 순교영성 심포지엄을 통해 신앙 전통과 순교영성을 되살리고자 애쓰고 있다.
 한국교회가 현재 시복시성을 추진 중인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 가운데 마산교구 소속은 모두 5위<상자기사 참조>. 신석복(마르코)ㆍ구한선(타대오)ㆍ정찬문(안토니오)ㆍ박대식(빅토리노)ㆍ윤봉문(요셉) 등으로 마산교구 출신으로는 첫 시복 대상자들이다.
 마산교구 성지 및 사적지정비소위원회 위원장 이형수 몬시뇰(교구 총대리)은 "본당은 물론 평협이나 여성연합회 등 교구 모든 단체가 올해 활동을 하느님의 종 5위 묘소 방문 등 순교자 현양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서 "성지를 재정비하고 심포지엄을 열어 성지가 지닌 역사적 가치가 재조명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교구 평신도사도직협의회(회장 강신근)는 지난해 12월 '순교자 윤봉문(요셉)의 신앙과 거제의 교회역사'를 주제로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교구장 사목교서 '순교영성으로 복음화'를 실현할 구체적 사업의 하나로 순교영성 함양은 물론 성지 성역화사업에도 박차를 가하기 위한 노력이다. 교구 청년연합회 역시 지난해에 이어 올해 4월에도 진주 장재동성당에서 정찬문 순교자 묘지가 있는 사봉성지까지 도보순례를 하며 순교 선조들의 발자취를 묵상했다. 교구 사제단도 순교자들의 시복시성을 염원하며 지난 5월 30일 함안시 대산성당에서 구한선 순교자 묘지까지 도보순례를 했다.
 교구는 하느님의 종 5위 관련 성지 성역화에도 힘을 모으고 있다. 정찬문 순교자 묘소를 관리하는 문산본당은 매년 순교자성월에 묘소에서 미사를 봉헌하는 한편 묘지 인근 토지 매입과 조형물 제작 등 성역화 사업을 계획하고 있다. 윤봉문 순교자 묘소가 있는 거제ㆍ통영 지역 8개 본당은 현재 순교자 현양사업단을 구성하고, 모금활동과 월례미사 등을 통해 성역화 사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박대식 순교자 묘지를 관리하는 진례본당은 매년 묘소에서 순교자 후손들과 함께 순교자를 기리는 미사를 봉헌하고 있는데, 마산교구는 장기적 차원에서 성역화 사업을 추진 중이다. 2002년 구한선 순교자 묘지 성역화 작업을 마친 대산본당도 매월 묘역에서 순교자 현양미사를 봉헌하고 있으며, 대산본당이 속한 마산지구는 지구 차원에서 매년 순교자 현양대회를 개최하고 있다.

▨ 명례성지 성역화 사업

하느님의 종 5위가 마산교구 신앙의 뿌리라면, 교구의 대표적 사적지인 명례성지(경남 밀양시 하남읍 명례리 1122)는 교구민들의 영적 고향이다. 명례는 순교자 신석복의 생가터이자 마산교구의 첫 본당이 있던 자리다. 마산교구는 그동안 방치하다시피한 명례의 성역화 작업을 시작했다. 그 현장으로 찾아가 본다.

▲ 마산교구 첫 본당인 명례성당
 
명례…마산교구 첫 본당, 신석복 순교자 출생지로서 의미
2008년 명례성지 조성위원회 결성, 성당 보수 주변 정리


# 역사 속으로 사라질 뻔 했던 신앙의 못자리

 낙동강이 삼랑진 방향으로 꺾어지는 지점 강변 언덕에 명례성지가 자리 잡고 있다. 눈앞에 훤히 펼쳐진 낙동강을 바라보면 문득 예수 그리스도께서 복음을 전파했던 갈릴래아 호수가 떠오른다. 성당 앞에는 수백 년은 족히 되었을 포구나무가 서늘한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오랜 세월 명례성지를 지켜 온 고고한 자태에서 신석복 순교자의 기품이 느껴진다.
 신석복 순교자는 1828년 명례에서 태어나 누룩과 소금 행상을 하던 상인으로, 1866년 병인박해 때 대구에서 내려온 포졸들에 붙잡혀 대구 감영에서 순교했다. 혹독한 형벌과 문초를 받으면서도 죽기까지 신앙을 지켰던 신석복의 마지막 한마디를 떠올려 본다.
 "나를 놓아준다 해도 다시 천주교를 봉행할 것입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먼지와 거미줄로 뒤덮여 있던 명례성지는 성지 성역화 담당 이제민 신부와 봉사자들 손길로 아름답게 변모하고 있다.
 남녀 신자석이 칸막이로 분리돼 있고, 본당 설립 당시부터 사용한 제대와 십자가 등이 그대로 남아 있는 성당 내부에서 초기 신자들의 신앙과 영성을 느낄 수 있다. 명례성당은 지난해 12월 경상남도 지정문화재 제526호로 등록됐다.
 밀양과 김해를 잇는 강변마을 명례는 정해박해(1827년) 이후로 박해를 피해 찾아든 교우들이 모여 살던 교우촌이었다. 영남지역 초기 천주교 신앙은 낙동강 물길을 따라 전파됐다. 성당은 주로 강변에 세워졌다. 경북 칠곡 왜관읍 낙산리 가실(낙산)성당과 상주시 사벌면 퇴강성당이 그러하다.
 대구본당 주임 김보록(파리외방전교회) 신부가 1887년 명례공소를 설립했다. 명례공소는 1897년 본당으로 승격되고, 김대건ㆍ최양업 신부에 이어 한국교회에서 세 번째로 서품된 강성삼(라우렌시오, 1866~1903) 신부가 초대주임으로 부임했다. 이에 명례 교우들은 현 위치(명례리 1122)에 120냥을 주고 세 칸짜리 집을 구입했다.
 강 신부가 7년 만에 선종한 후 명례본당은 마산(현 완월동)본당 관할 공소가 됐다가 1926년 권영조(마르코) 신부가 부임하면서 다시 본당으로 승격되고 1928년 기와성당을 지어 봉헌했다. 아쉽게도 이 성당은 1935년 태풍으로 전파되고 지금 성당은 1938년 무너진 자리에 축소 복원한 것이다. 명례성당은 이후 본당 소재지가 이전됨에 따라 공소로 명맥을 이어 오다가 점차 사람들 기억에서 잊혀 사라질 운명에 처해 있었다.
▲ 명례성지 성역화 담당 이제민 신부(왼쪽)가 우사를 철거한 신석복 순교자 생가터를 새 단장하기 위한 조경계획에 대해 인부들과 의논하고 있다.

# 사적지 복원, 성역화 박차 

 "지난 2006년 진영본당에 부임하면서 우연히 명례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낙동강을 따라 경남지방에 천주교가 들어온 길목이었던 명례공소가 신석복 순교자 출생지이며, 영남지역 네 번째 본당이자 마산교구 첫 본당이라는 것을 알고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하지만 이제민 신부가 찾은 명례공소의 첫 인상은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거미줄을 헤치며 빈 공소에 들어서는 순간, 울컥 눈물이 났습니다. 더욱이 담장을 사이에 두고 성당과 맞닿아 있던 우사(牛舍)가 신석복 순교자 생가터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는 착잡한 마음을 억누를 수 없었습니다."
 마산교구는 잊혔던 명례성지의 역사적 의미를 되살리고자 2008년 명례성지조성위원회를 결성하고 성역화 작업을 시작했다. 그동안 노후화된 성당을 보수하고 인근 부지 약 6600㎡를 매입해 성역화 기반을 마련했다. 성지 마당에 돌로 된 제대를 설치했고, 순례자들이 쉬어갈 수 있는 작은 집도 한 채 마련했다. 지난해 말 매입한 신석복 생가터도 분뇨 냄새를 풍기던 우사를 철거하고 나무와 잔디를 심어 주변을 정리했다.
 마산교구는 이 일대에 기념성당과 피정의 집 등을 지어 신앙 선조들의 영성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신앙의 산실로 조성할 예정이다. 가능하면 태풍으로 파괴되기 이전의 옛 성당도 복원한다는 구상이다.
 이 신부 노력으로 점차 명례성지가 알려지면서 요즘 이곳을 찾는 이들 발걸음이 늘고 있다고 한다. 이 신부는 "시성시복운동과 순교자 현양은 순교자들의 영웅적 덕행과 순교 사실을 강조하기 보다는 그들의 삶과 신앙을 오늘에 되살려 세상을 복음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서영호 기자 amotu@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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