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지에서 온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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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08. 07발행 [1128호]
 
[선교지에서 온 편지] 코레아 다도(茶道), 월더풀!!

페로에제도(하) 이연희 수녀(마리아의 전교자 프란치스코회)

 
▲ 울긋불긋 한복을 차려입은 아이들. 장난꾸러기 아이들이 한복을 입고 점잖게 앉아 차를 마시는 모습이 얼마나 예쁜지 모른다.
 

  제가 일하는 유치원은 오는 9월 1일이면 개원 80돌을 맞습니다. 페로에제도에서 역사가 가장 오래되고, 규모도 가장 큰 유치원입니다. 직원 20여 명이 아이들 85명을 돌보고 있는데, 한국에 비하면 이곳 직원들의 노동조건은 너무 편하다 못해 부럽기까지 합니다.

 2년 전 가을인 듯 싶습니다. 한국의 추석 명절이 돌아오면 5인용 녹차 다기세트를 이용해 공동체의 다섯 수녀님들께 다도(茶道)를 선보이려고 한국 전통부채에 초대장을 오려 붙여 식당에 걸어놓았습니다. 녹차를 좋아하지만 다도에는 문외한이어서 유치원 아이들에게 한복을 입혀 몇 번 연습해보았습니다.

 #다도에 대한 호기심

 호기심에서인지 아니면 정말인지 아이들도 녹차를 좋아하더군요. 잠시도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하는 한 남자 아이가 한복을 입고서 얼마나 진지하게 차를 마시던지 정말 신기했습니다. 저도 한 번은 한복을 입고 등장하기로 했습니다. 구석에 커튼을 치고 몇 겹의 옷들을 걸치느라 시간이 걸리니까 아이들이 언제 나오느냐고 보채더군요. 한복 입은 제 모습을 보려고 직원들도 몰려왔습니다.

 제가 먼저 차를 달여 한복 입은 아이들에게 따라주었습니다. 그 다음에는 그 아이들이 관람객석의 아이들에게 똑같이 따라줬습니다. 한복 입은 아이들이 다도를 마친 후 구경한 친구들을 향해 엎드려 큰절을 하는 모습은 귀엽고도 우스웠습니다.

 드디어 한가위 저녁, 한국에서 가져온 쌀과자로 다식을 대신하고 나름대로 다도 면모를 갖추려고 애를 썼습니다. 물론 저도 한복을 입고 기억나는 대로 다도에 대해 설명하고 약간은 떨리는 마음으로 시작했습니다. 마치 대중 앞에서 실기시험을 치르는 학생이 된 느낌이었지요. 어느 수녀님이 나중에 그러더군요. 차보다는 쌀과자를 먹는 차례를 기다리느라 애를 먹었다나요?

   다도는 모든 것이 침묵 안에서 이뤄지는데, 다식을 대신한 바싹 구운 쌀과자는 이 침묵을 깨기에 충분했기에 우리도 예절의 규칙을 깨야만 했습니다.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콩고 출신 신부님과 네덜란드 수녀님이 오셨을 때도, 다도예절에 초대했습니다. 신부님은 다도가 끝나고 자리를 뜨시면서 "참 좋은 생태학적 시간이었다"고 말했습니다. 맞는 말씀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물을 데우는 것에서부터 뜨거운 물로 헹구는 설거지 끝 손놀림까지 인간의 눈, 코, 입, 손 등 온 몸의 감각을 이용해 자연과 하나되게 하는 소박한 예절이 거룩한 예식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곳에서 차를 마시자고 초대를 받아 가보면, 케이크를 먹기 위해 차를 마시는 건지 차를 마시기 위해 케이크를 준비하는 건지 헷갈릴 때가 있거든요.

 지난해 가을에 다도를 다시 한 번 선보일 기회가 생겼습니다. 유치원 주간행사 주제를 '다국적 문화'로 정한 뒤 아이들과 직원들 출신 국적을 합쳐보니 거의 13개 국가나 됐습니다. 여러 팀으로 나뉜 직원들은 아이들 시선을 좀 더 넓은 세상으로 열어주는 놀이들을 마련했지요.

 제가 속한 팀은 음료문화에 관한 것이어서 한국의 다도를 아이들과 해보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그 주간 5일은 제가 매일 한복을 입고 벗느라, 또 아이들에게 한복을 입히고 벗기느라 땀을 좀 흘렸지요. 아이들의 호기심은 대단했습니다. 특히 여자 아이들은 자신을 공주로 변장시켜주는 한복을 입어 보려고 앞다퉈 줄을 섰습니다.
▲ 가정방문 중에.

 #한복 갈아입느라 땀 뻘뻘

 그런데 남자 아이 시몬이 제게 다가와 한복을 입지 않고도 차 준비를 해볼 수 있냐고 해서 한복을 입어야 한다고 했더니, 다른 큰 남자 아이들이 "남자 한복이 여자 색깔이다"며 소근거린다나요? 그래서 그에게 말했지요. "네가 진정으로 차를 준비해 보고 싶으면 용감하게 한복을 입으렴. 그 옷을 입는다고 해서 네가 여자 아이가 되는 것은 아니야."

 그가 용기를 내어 옷을 갈아입고 얼마나 진지하게 차를 준비하던지 옆에서 지켜보는 저까지 숙연해졌습니다. 나중에 시몬이 다가와서 속삭였습니다. "제가 우리 그룹 중에서 가장 용감한 아이였어요, 그렇죠?" 그렇습니다. 시몬은 정말로 용감한 사나이였습니다.

 오후에는 아이들이 주로 운동장에서 놉니다. 가끔 마주치는 다른 반 아이들이 저를 보고는 갑자기 멈춰서며 "난 플로렌스(필자)가 어느 나라에서 온 지 알아요, 코레아. 오늘 코레아 국기를 색칠했어요"하고 다시 자신의 길을 달려갑니다. 다도반에서 얼굴을 어느 정도 익혔기에 이제는 저를 안다며 미소를 띄우는 아이들 모습은 예쁘기만 합니다.

 이 다도 또한 페로에제도에서 생각지도 않았던 것 중 하나입니다. 그래서 고국을 떠나 지금까지 10년을 타향살이하면서 자주 외치게 되는 저의 찬미의 모토는 라틴어로 'Deus providebit!'(야훼 이레, 하느님께서 마련하실 것이다)라는 구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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