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창연 신부의 행복특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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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08. 12발행 [1178호]
 
[황창연신부의 행복특강] <15>서비스 시대, 교회의 본질 '섬김'으로 돌아가야



  현대 교회 화두는 선교다. 우리나라 천주교 신자 500만 명 중 미사 참례 인원은 125만 명이다. 4인 가족 중 1명만 성당에 나오고 있는 셈이다.

 사람들이 이처럼 성당을 찾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국민 소득 2만 달러를 넘어선 이후부터 사람들은 서비스에 대한 욕구가 증가했다. 하지만 한국교회는 신자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

 로리 베스 존스는 「최고 경영자 예수」라는 책에서 신자들을 하늘나라를 산 고객이라고 표현한다. 고객 경영의 최고 기본은 고객 만족과 감동이다. 그러나 성당에서 서비스로 감동 받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서비스(?)를 받는 사람들을 칭하는 용어부터 다르다. 가톨릭에서는 신자(信者), '믿을 신'에 '놈 자' 자로 표기한다. 개신교는 거룩한 무리라는 뜻을 가진 성도(聖徒), 불교는 부처의 아들이라는 의미로 불자(佛子)라고 쓴다. 개신교와 불교와 비교하면 가톨릭 신자들은 수직적 상하구조 아래 놓여있다.

 예수님 경영기법의 기본은 '섬김'이었다. "너희 가운데에서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마태 20,26)고 하시며 예수님께서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오셨다고 말씀하신다.

 하지만 교회 구조는 거꾸로 돼 있다. 교회는 교우들이 사제와 수녀를 섬기고, 사제들은 주교를 섬기는 수직적 의사소통 체계로 움직인다. 대통령도 국민을 섬겨야 하는 시대에 교회의 이러한 구조는 교회 밖 사람들에게 경쟁력이 없을 수밖에 없다.

 예수님께서는 스스로 옷을 걷어붙이고 제자들의 발을 닦아주셨다. 가장 낮은 종의 모습으로 제자들을 섬기셨다. 섬김은 21세기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본질이다. 교회가 섬겨야 할 이들은 바로 신자다.

 선교를 잘하려면 교우들에게 감동을 줘야한다. 감동을 구현한 서비스는 길거리 선교보다 더 큰 효과가 있다. 교우들이 행복하면 성당을 짓는 일도 수월해질 수 있다. 자신이 받은 감동을 다른 사람들에게 다시 전하기 위해 내놓는 헌금과 자발적 봉사는 선순환 고리를 만들기 때문이다.

 현대인들에게는 '기쁨의 영성'이 필요하다. 우리가 언제나 기뻐하는 것은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일이다(1데살 5,16-18 참조). 개신교하면 떠오르는 단어가 '감사' '찬양' '영광' '아멘' '알렐루야'라고 할 때 천주교는 어떤 단어가 떠오를까? '참회예절' '고해성사' '십자가의 길' 이라고 말한다. 어떤 것이 더 중요한가의 문제보다 신자들에게 각인된 성당에 대한 이미지가 '우울한 영성'으로 자리 잡은 게 아닌가 해서 우려된다. 하느님께 받은 은총에 감사하며 기쁘게 생활하는 것이 신앙의 본질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정리=박정연 기자 cecil@pbc.co.kr


※평화방송 TV 방송시간 : 금요일 오전 8시(본방송), 토요일 저녁 8시(이하 재방송), 일요일 오후 6시, 월요일 오후 8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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